지난 9월 11일은 오전 오후 모두 일정이 있어서 바쁜 하루였습니다.

오전에는 오산시가족센터에서 사춘기 부모를 위한 부모교육을 진행하고,

끝나자마자 바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이동해서 조부모님들을 만났습니다.


의뢰받은 강의는 손자녀를 돌보는 조부모님들을 위한 교육이었습니다.

'사랑은 내리사랑, 소통은 맞춤 소통'이라는 주제로

자녀와의 사이에서 일어날법한 갈등을 다루는 법과 손자녀의 발달에 맞는 양육법을 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교육 전 미리 강의 자료까지 보내드리고 배부해 드리기도 했지요.

다행히 도로 사정이 나쁘지 않아서 예정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했습니다.

강의는 수운회관 9층 907호였습니다.

강의장으로 가까이 갈수록 강의장 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아마도 아로마 향수를 만드는 중인듯했습니다.

열정적인 강사님의 목소리에 차마 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다 바로 옆 빈 강의실이 있어서 기다리기로 했지요.

문득 나도 저 강사님처럼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제시간이 되었습니다.

강의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 동안 둘러보니,

참여하신 조부모님들의 연령대가 제가 예상한 것보다 높으신 것 같아 살짝 당황했습니다.

팔십이 넘으신 저희 친정어머니와 비슷한 연령대의 분들이 대다수인 듯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확인해 보니 손자녀를 돌보는 분은 고작 두 분밖에 안 계셨고

나머지 분들은 이미 손자녀까지 성인이었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해 온 자료들은 이분들에게는 무용지물일 듯하고,

그렇다면 어떤 주제가 가장 적합할까를 생각했지요.

설상가상이라고 하나요?

컴퓨터와 빔프로젝터가 연결이 되지 않아서 난감한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오랫동안 강의를 하다 보니 이런 돌발 상황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지요.

하지만 20년 가까이 강의를 해온 저에게는 이 정도로 당황할 이유가 없지요.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고 하죠.

일단 담당 선생님들께서 컴퓨터를 손보는 동안 

조부모님들과 몸을 살짝 풀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을 했습니다.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빔프로젝터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양해를 구하고 이 자리에서 주제를 살짝 변경했습니다.

가족 갈등을 풀기 위한 소통으로 이어가기로 했지요.

가족 갈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사안이기에 집중도는 높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가족 또는 지인 간의 갈등에 대해서 나누는 시간에 맨 앞에 앉으신 어머님께서

"난 갈등은 없고 울 가족 자랑을 하고 싶은데 괜찮아요?"라고 질문하셨습니다.

모두의 동의를 구하고 자랑 타임을 드렸더니,

환한 미소를 머금고 자녀와 손자녀가 얼마나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를 자랑하셨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여하신 모든 분들의 표정은 밝으셨고 느긋하셨습니다.

강의가 시작되면서 한 분 한 분 제게 오셔서 반갑게 인사하시면서

이것저것 군것질거리를 계속 주시기도 하셨지요.

어쩌면 치열하게 살아오신 결과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속속들이 사정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이분들이 짓는 행복한 표정 이면에는 수십 년간 열정을 다해 애쓰신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겠지요.

강의를 하는 와중에도 존경심이 마음에 새록새록 올라오는 걸 느꼈습니다.